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다

나를 구원하는 저항, 2024.12.07

스무살 초반에 학생 사회 참여하고 소수자 옹호하고 운동권 찌라시라고 사람들이 떠들던 것 만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때라고 확신한다. 보람 따위가 전무하고 개인적인 불이익만 많아서 몹시 자조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고 배알만 꼴렸다.

취업 같은 것 생각 안하고 이렇게 인생을 꼬고 있는게 참 한심해 보였다. 학생처장이 또는 누구 교수가 날 알고 못 살게 구는데 학교 무사히 다니는 게 가능은 한지 의문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사람들과 키보드 배틀을 너무 많이 해대는 통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기자로 있었던 독립언론 신입기자 모집 포스터에 "인생의 굴곡 모자라신 분 모십니다."라고 궁서체로 써놓고 팀원들과 낄낄댔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돌아보면, 정말 학교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에 차서 그런 활동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안하면 내가 좆될 것 같아서 했다.

나를 둘러싼 공동체와 세상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내가 할 수 있는게 정말 하나도 없을까? 나라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내가 사는 세상에서 좋은 구석이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속에 살아가는 나도 스러질 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려면 우울과 불편 속에서도 그 틈바구니에 기꺼이 있어야만 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는 해야 했다.

유튜브를 뒤적이다 과거 방송 클립에서, 유시민 작가가 왜 자신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는지를 말하는 장면을 봤다. 인용하면 "내 삶의 방식에 비참함과 비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못 이길 것 같은데 그대로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거야", "때로 사람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런 일을 해요.", "내가 안 한다고 해서 누가 나보고 욕하지 않아요.", "고생은 좀 하기는 했는데,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비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살았어요."

내 싸움은 군사정권 항거보다 작았다. 훗날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하며 행하지도 않았다. 것보단 훨씬 근시안적이고 생각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다.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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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 일하는 회사에서 1년째 하나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내가 해 본 모든 종류의 일 중에 어렵고 오래 걸리기로 손에 꼽는다.

대충 설명하자면 폭탄 해체같은 일이다. 기계를 이루는 부품과 전선들이 규칙없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특정 부분들을 안전하게 제거하고 정리해서 더 나은 설계로 동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꽤나 벽에 부딪혔다. 너무 복잡해서 모든 변수와 문제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문제에 압도당했다. 아침에 출근해 앉으면 종종 명치 끝이 뜨거워졌다.

이직한 친구가 "이직하고 가장 좋은 점은 여기엔 내가 만들어낸 코드가 없다는 거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 엄청, 엄청 부러웠다. 내가 풀고 있는 문제나 과거의 실수가 모두 없어지고, 깨끗한 상태에서 다시 뭔가 시작하는 감각이 정말 좋을 것 같다.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나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남아있게 하고 싶지 않다. 여기서 그만둔다면?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 내가 푸는 문제 결국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하면 최선을 다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니다.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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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모든 불편을 약속하고 계속 불행해야 한다. 다른 말로, 저항해야 한다. 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커다란 국가와 사회와 집단, 내 운명과 능력, 모든 실제 혹은 관념적인 것은 저항의 대상이 된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끝)


Written by 김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