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쓰게 되었나
글을 쓴지가 10년쯤 되었다. 동안에 안 읽은적은 있어도 안 쓴적은 없는 것 같다. 쓴 것을 독자에게 보이는 방법도 몇 번 바뀌고 글쓰기에 대한 관점도 그랬다.
이야기
성인이 되기 전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당연한데 인생을 몇 년 못 산 사람이 들려줄 이야기가 마땅치가 않아서, 개같은 이야기 지어서 쓰고 있는 이야기 배껴서 살짝 바꿔 쓰거나 그랬다.
나는 조잘조잘 신변잡기적인 인간이라 묻지도 않은 것들을 술술 말하며 지금도 그렇다. 속에는 뭔가 이야기가 많은데 이때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몰라 괴로웠었던 것 같다.
잘 안되서 막 소설 잘 쓰는 법 책 읽고있었는데, 이미 시집을 낸 친구가 잔뜩 취해서 이딴거 읽어봤자 너가 쓸 수 있을 것 같냐고 이야기하는게 무지 서글펐다. 부럽기도 하고
야마
그쯤이 스무살이었고 난 창작은 글렀네 하면서 시작한게 학교 독립잡지였다. 잡지는 학교나 대학생 관련만 있으면 거의 뭐든 쓸 수 있었는데 이게 좋았다. 독자가 어느정도는 계속 있다는 것도 좋았다. 이때부터 종이 간행물을 좋아하게 됐다.
이때는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명징하게 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원래는 막걸리 리뷰 같은거나 많이 쓰려고 들어왔었는데 실상 많이 쓴 글은 누가 누구에게 뭔 짓을 했는데 이게 짱 나쁘고 대학 사회가 망해가고 이 나라도 망해간다는 식의 글이었다.
당연스럽게 글에 야마를 넣는 방식이 훈련됐다. 언론사 기자를 진지하게 준비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미움을 너무 많이 받는 직업 같아서 접었다.
"팔리는"
전역하고는 에디터가 되고싶어서 대학내일에서 캠퍼스 에디터로 잠깐 일했다. 이때 썼던 글은 사람의 이목을 끌어야만 하는 마케팅 컨텐츠였다. 글이 팔리려면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조금 배운 것 같다. 글의 전체적인 연출을 생각하는 안목이 생겼다. 후킹되는 포인트를 어디에 준다거나 등등
나 주제에 트렌드에 민감해야해서 괴롭게도 없는 인싸력을 모두 모아 버텼다. 주 독자가 여대생인 간행물에서 내 아이템은 헛다리짚고 자꾸 죽고 그랬다. 그럼에도 결과물은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쓴 글이 실린 대학내일 잡지들을 가끔 꺼내보는데 언제 또 이런 글을 써볼까 싶다.
이때쯤 글로 밥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접었다. 이때서야 내 이야기를 원할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편협하게 경험한 에디팅은 나를 최대한 없애야 했던 것 같아 썩 유쾌하게 일할 것 같지 않았다. 데스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양산업이라 구직도 힘들었다. 대학내일은 이제 종이잡지가 나오지 않는다.
간결함
엔지니어가 되고 기술 글쓰기의 세계를 만났을 땐 당황스러웠다. 여기는 한 문장이 한 문단이었다. 마크다운 불렛 하나도 어절이었다.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실용적으로 존재가치가 있어야 했다.
원래 썰 푸는 글쓰기가 보고 배운 전부다. 설명해주고 싶은게 많아서 주저리주저리 하고싶은 말 다 쓰다가 아무도 안읽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블로그에 올린 기술 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간결함을 얻어갔다. 이 연습이 지금 회사에서 기술 문서를 쓸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러한 기술 글쓰기의 경향은 주제가 기술이 아닌 글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려놓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 TMI는 조금만. 조금 구어체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글에 마구 섞였던 막, 지금, 뭐, 사실 이라는 표현은 쓸데 있을 때를 빼고 다 쓸데없다. 더이상 써놓은 글에 이런 이야기도 넣었으면 좋았을걸... 같은 후회는 안 한다.
앞으로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을 쓰고 싶은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 한다. 쓰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개발자로 취업하고 싶어서 만든 마음 반이었던 기술 블로그에서 “기술”을 떼버렸다.
돌어보면 문학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실용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과정에서 글 속의 “나”를, 공차에서 파는 펄추가한 블랙 밀크티 당도처럼 십프로 삼십프로 오십프로씩 조절해서 넣는게 가능해졌다. 그나마 쌓인 능력이라면 요런 것일테다.
목표가 있다면 내 이름으로 된 책 내고싶다. 간행물은 지금도 내고싶다. 그냥 사람들 모아다가 돌아가며 쓴 글 모아다가 계간지처럼 만들어 여기저기 나눠주고 싶다. 순수하게 재미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쓰고 싶은지는 모른다. 과거에는 이우성, 위근우, 듀나처럼 쓰고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목적지는 없다. 치열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좋은 문투와 느낌은 자연스럽게 내 글에 와서 붙었다. 그냥 계속하고 싶을 뿐이다.(끝)
예전에 썼던 글 중 웹에 공개된 일부는 about 페이지에 링크로 모아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