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Cool for School
처음 타본 1호선 지하철 안에서, 종점인지도 모르고 칸의 불이 꺼질 때 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대학교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면 일련의 혼란스러움들이 먼저 떠오른다.
입시 패배감 속에 상경해서 반수해야 하는데 과 사람들이랑은 얼마나 친해져야 하지 고민했던 일. 미움받기 싫어서 기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었던 일. 입대를 위해 좋아하던 것들을 두고 KTX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느꼈던 심란한 감정. 나를 달가워하지 않고 미워하기까지 하는 수십명 사이에서 우뚝 혼자만 서있었던 일. 큰 마음의 아픔을 겪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던 일. 그 사람한테 꼭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데 영영 기회를 잃어버린 일… 모두 처음 겪었고 나는 매번 어쩔 줄을 몰랐다.
부닥친 냉소와 불신도 생각난다. 네가 글을 써봤자 어떤 조그만 사회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학교의 높으신 분들. 학생 사회에 참여하고 글쓰고 알리는 거 이걸 대체 뭣 때문에 하는 거냐며 얼굴 위로 수 개의 물음표를 띄우던 사람들. 경영을 복전하지 않으면 취업하지 못할 거고 개발해봤자 전공자들한테 다 질거라는 식의 말을 했던 선배도 생각난다. 더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자극이라고 미화하기에는 상처가 크게 남아있는 말들과 행동이 많다.
나도 내가 싫었다. 이 난리통에서 좋았을 리가. 혼란 속에서 믿어주고 응원해준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좋은 말들도 귀에 잘 들어오기 힘들었던 것은 나도 스스로를 못 믿었기 때문이었다. 툭툭 던져지는 말들 속에서, 저게 맞을지도 몰라. 내가 뭔데 이걸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월에 한 이백 오십만원 정도만 벌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살았다. 불안은 숨기기가 힘들어서 사람들이 내 주위에 머물지를 못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몹시 자학적이라 내 탓만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최초의 순간은 개발로 처음 돈을 벌었을 때다. 인적성, 고시, 자소서, 현직자 선배의 조언 비슷한 걸 알아봐야 할 줄 알았다. 에휴 이제 쓸데없는 것 그만하고 취업해야지, 모드 전환하고, 학교에서 그나마 좋아했던 것과 보냈던 시간을 잔뜩 후려치면서 그 모든 것 이 중단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아니었다. 이게 꽤 큰 자신감이 되었다. 구직 시작하기 전에 큰 돈 들여서 머리까지 하고 좋은 사진관에서 취업사진을 찍었는데 이력서에 붙여 낸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큰 쾌감을 느꼈다.
다녀야 할 학기를 멈추고 적만 두고 떠나있었던 커리어의 극초반에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거의 부정하다시피 살았다. 헷갈리고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과거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졸업장과 남은 수업들을 무지 거치적거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었고 주위에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물론 납작한 생각이다.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지금 나의 많은 부분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갈등의 한복판에 서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가치를 배웠다. 살아가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죽이고 있는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었다. 영어로 글을 쓰고, 12문장 제한으로 책 한권 내용을 쓰는 에세이 차력쇼를 하고, 시험지 6장을 꽉 채워 냈던 과거시험 같았던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좋아만 했던 글쓰기를 기술로 바라보고 갈고 닦을 수 있었다.
스스로 처맞아가면서 학습한 것, 그리고 강의실에서 배운 것들이 있다. 처맞는 배움에서 오는 기쁨과 보람이 컸고 수업은 싫었다.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온전히 나에게 최적화된 상황으로 선택할 수 없다. 내 배움을 선택하고 내 성취마저도 스스로 채점할 수 있는, 학교에 있기에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스템안에 있지 않아도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십수년의 학교 생활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내 모습이다. 결국 학교를 다니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결국 대학에서 느꼈던 좋고 나쁜 무언가들이 섞인 이 글처럼 혼란스럽게, 나는 제적을 한 학기 앞두고 졸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이 복잡한 모든 느낌들이 어떤 결과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에야 졸업장이란 것이 나의 현재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해서 대학에서의 일도 뻘짓이 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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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서관 공사 이후 상당 부분이 사라지긴 했는데 학교 중앙 도서관 뒤 벤치가 있었다. 쪽문과 건물 사이에 난 좁고 애매한 공간이라 사람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유난히 여기서 픽 쓰러졌었다. 스스로의 혼란스러움을 어쩌지 못한 탓이다. 주저앉아 심난해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졌고, 울었고, 울면서 전화했고, 깔깔 웃기도 했고, 옆에 친구를 앉혀놓고 장광설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후에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지고 벤치에서의 순간들을 내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한 장면으로 여겼다.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며 부정하며 살았지만 어떤 순간들은 지금 내 몸과 마음 곳곳에서 발견된다. 추억하면서 고마워하면서 싫어하면서 무엇인지 모를 것들을 이제 여기에 놓았다. 다시 이곳에 찾아오게 될까?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