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이기는 재미
삶에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내 삶에서 참으로 몰두했던 것들은 대부분 나한테 꽤 잘 맞거나, 재미있어 보이거나 재미있는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형의 무언가였다. 뭔가 열심히 해서 개인적이나 공익적인 차원에서 뭔가 이루고자 한 적이 잘 없다. 뭔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해야겠다 싶었다거나,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무엇이다.
열심히 하면 바라는 것 정도야 있었지만 그걸 얻어내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독립언론 판에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좀더 나은 결정을 내리길 바랬을 뿐이었지 나는 여전히 남들 눈 닿지 않는 곳에서 내가 쓰고 싶은 영화나 술 관련된 글이나 썼었다. 몸담았던 크고 작은 조직에서도 더 높이 올라가보거나 뭔가 큰 목표를 달성하고자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목표를 나에게 막 부여하며 내가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잘 못 어울렸다.
이런 배경과 마음가짐으로 IT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게 조금 신기하다. 스타트업 씬은 가득한 욕망으로 움직인다. 이 곳의 몇 사람들의 목표는 1000억쯤 버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나는 그런게 없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나는 스타트업에 있기에는 너무 욕심이 없다고 하소연했던 적이 있었다. 1000억쯤 번다 정도의 목표는 가질 수 있어야 이곳에 있을 수 있는거 아닐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친구는 1000억을 벌겠다는 사람 중 몇 명이나 1000억을 벌겠냐 망하지만 않으면 다행인거지 - 같은 이야기 하면서 내 답없는 말들을 들어줬다. 지금 생각하면 뻘하게 웃기다.
목표 같은거 잘 못 세우는 사람인 것도 맞다. 삶에 대체불가능한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만들었을 때 스트레스가 더 크다.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을거라 곤란해보이는 말이지만, 내 생활과 일과 삶이 목표에 기여하는 현상 자체가 싫다. 거대한 소명, 언명 같은 것으로부터는 항상 자유로운게 좋다. 나는 내가 설정한 목표마저도 무슨 거대한 선언처럼 느낀다. 무언가에 기여하기 위해 삶을 통제하려 는 시도는 항상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걸 하게 만드는건 재미 쪽이 좀 더 가까웠다. 직장생활에서도 회사가 추구하는 미션이 재미있고, 회사에서 하는게 재미있으면 즐겁게 다녔고 다닌다.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좋다. 개발도 밥값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든 이후로는 성장 자체가 목표인적은 없었다. 엔지니어링이 주는 재미가 뭔가를 계속 하게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을 더 재미있게 잘 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그 과정은 즐겁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만 봤을 때 나 한정 재미만 좇아도 삶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행하면 즐거운 것에도 재미가 있지만 의미있는 것에도 재미가 있다. 재미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가장 가볍고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통해 무언가 이룰 수 있고 이루려 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행복하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인데, 내 삶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추가하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재미있던 것만 지속했지 새로운 재미들을 찾아 내 삶을 바꿔보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탐색과 새로운 선택을 해봐야겠지 싶다.
쭉 써놓고 보니 글이 전반적으로 궤변같기도 하고... 왜 이런 글을 시간들여 쓴걸까 그런데 진짜 이렇게 생각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