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하면서 행복해지는 법

과로 속에서도 행복을 지키기 위해 실천한 네 가지
2026년 05월 05일 /
#thought#culture

작년 말부터 올해 1Q까지 회사에서 역대급으로 일을 많이 했다. AI 시대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쟁의 맥락 안에 있었다. 996, AI로 인한 SaaS의 종말 썰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회사의 AI 제품을 계획하고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엄마랑 전화해 주에 50시간 넘게 일한다고 말하니 너에게 일을 그렇게 시키는게 누구냐고 물었다. 대체로 측은한 시선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쩐지 불행을 약속받은 사람이 되고, 받아들이다 보면 정말 그렇게 살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과로의 시간들이 마냥 즐거운 여정이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팀의 목표에 잘 정렬되어있기 때문에 기꺼이 기여하려는 마음으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딱한 상황은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일하며 행복한 나를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과로한 가운데서도 행복을 느끼기 위해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다.

첫 번째는 운동이었다. 머리를 끝까지 쓰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두통이 없어지지 않는 그 감각을 아시는지? 잠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머리가 과열된 상태로 오래 유지되는게 문제다. 아침마다 너무너무 하기 싫음에도 헬스장을 가서 무거운 것을 들고 밤에는 러닝을 계속했다. 운동 그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라기보다는 자연히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생각과 일을 하는 에너지의 상승률을 완만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두 번째는 주변 환경을 돌보는 일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잠들면 집은 매일 더러워지기만 했다. 이 상태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스로의 삶이 잘 돌아가지 않으며 나락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성과로 잘 보이지 않는 시기에는 더 그랬다. 뭐가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 와중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데서 생기는 작은 성과가 필요했다. 12시에 퇴근해도 30분간 집을 치우고 잤다.

세 번째는 추구미다. 가처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할 때 집 상태만큼 내 자신도 같이 무너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행위, 좋아하는 취미 같은 일을 멈추면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내 시간이 나를 위해 쓰이지 못한다는 감각이 커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도 흐려진다. 회사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책을 읽고, 블로그에 올리진 못하더라도 글을 계속 끄적였다. 뭐라도 잘 못할 때는 애플 뮤직에서 새로 나온 댄스 음악을 디깅하고 좋아 보이는 곡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는 거라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나, 좋은 음악을 듣는 나라는 자아를 지키는 행위였다.

네 번째는 배우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일에 시간을 막대하게 쏟는 시기에는 인풋보다 아웃풋이 압도적으로 많다. 좋은 레퍼런스나 해볼만한 것들을 머리에 채워 넣은 뒤 활용해 일을 해내기보다, 실패해도 좋으니 빨리 해보고 넘어가는 방식이 잦다. 그러다 보면 뭔가를 배우고 있다거나 실력이 오르고 있다는 감각이 거의 사라진다. 일을 정말 많이 하는데도 나태하고 진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옵시디언 데일리 노트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 적어보고, 의식적으로 아티클을 읽고 AI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고 북마킹하는 일을 반복했다. 빠져나가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다시 주워다 내 안에 가져다 두는 일이었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다음 문장은, 나같은 (혹은 또한 다른 곳에 있을) 과로인에게 굉장히 좋은 지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고의 자아를 직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그 자아를 그대로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과는 다른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균형이란 삶에 대한 관심이 일에 대한 소홀로, 일에 대한 관심이 삶에 대한 소홀로 이어지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의미한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일과 삶의 통합이다. 직장에서도 온전한 자아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실천들은 내가 회사에 데려갈 자아를 보존하는 일이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나, 안 더러운 나, 그럼에도 하고싶은 일을 하는 나, 무언가를 배우는 나. 그러한 자아를 데리고 다음 날 회사로 가야 일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나왔다.

은퇴할 때까지 지금 정도의 강도로 일해야만 한다면 어떨까.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일 텐데, 그렇다고 해도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럴 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한 행동들을 꾸준히 하면서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Written by 김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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