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러닝을 언러닝하기
언러닝이라는 말이 진짜 자주 들리는데, 이게 참 느끼하고 거창해서 킹받는다. 별게 아니다. 새 시대에 강림하다시피 한 덕목 같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고, 먹고살기 위해 한 번쯤 해보는 일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커리어 초반은 인쇄업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 42세의 나이로 인쇄업을 파트너에게 넘기고 전기 연구로 넘어갔다. 이후 피뢰침을 만들고, 공공사업과 정치, 외교로 자리를 옮겨서 건국의 아버지가 됐다. 인쇄업이 만들어준 부와 시간 위에서 그는 다음 일로 옮겨갔다. 자기 직업을 갈아엎은 적은 없다. 거기서 생긴 여유를 다음 관심사에 썼을 뿐이다.
안철수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했던 말도 비슷하게 읽힌다.
효율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죠. 의사로서의 그 생활 14년 동안 했던 게 CEO 하면서 거의 쓸모가 없어졌고요, 프로그래밍할 때 그것도 CEO 할 때는 쓸모가 없어지고요. 그러니까 효율적인 인생이 성공이라고 하면 저 같은 사람 인생은 실패라고 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정말로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 쓰는 시간은 저는 값진 시간 같아요.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가 무엇에 맞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일이 자기에게 맞는지는 해봐야 안다. 의사에서 백신 개발자로, CEO로, 교수로 자리를 옮긴 시간은 효율의 관점에서 실패처럼 보이지만, 안철수에게 그 시간은 자기에게 어떤 일이 맞는지를 계속 확인한 시간이다. 두 사람이 언러닝을 해서 저렇게 되었나? 그저 지금의 자기를 완성본으로 두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인문학 전공자였고 에디터가 되고 싶었다가 2019년에 개발자가 돼서 7년째 하고 있다. 그때 무슨 비장한 결단을 한 게 아니었다. 에디터로 회사에 취직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적당히 버는 미래보다 적당히 흥미가 있는 일로 돈을 더 많이 버는 미래가 나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잘 풀렸고 운이 좋았다. 개발을 배우는 일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과의 공통점을 자꾸 찾아내며 이것도 할 만하다고 느낀 시간이었다.
지금은 언러닝마저도 값이 싸다. 현재에서 성취할만한 목표로 향하는 과정은 AI나 정보 접근성이 높아져서 매우 짧아졌다. 개발자가 클로드 코드 같은 도구로 누구나 코딩을 한다고 좌절하는 것도 유행이 지났다. 자기가 기획을 한다면, 디자인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너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가방끈 긴 사람들의 일이라고 여겨지던 분자생물학 연구, 고소장 작성, 세금 신고도 마음만 먹으면 해볼 수 있다. 이제 언러닝은 그냥 하면 되는 일이 됐다.
언러닝이라는 말 자체를 언러닝해야 할 때가 쉽게도 왔다. 자기를 다 버리고 다시 배우라는 조언도, "너무 엑셀 팡션? 사용 하지 마세요." 에 대한 조롱도 귀기울여 들을 것은 못 된다. 좀 더 나아가서 모든 과정과 목표를 다 깔보고 그냥 해보고 싶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